독도 문제에 가려진 제주도 남방 대륙붕 문제

 

                                                               디펜스코리아 자문위원 신재호

 

1998년 한국과 일본은 새로운 어업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의 정식명칭은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어업에 관한 협정"이므로 언뜻 어업협정에만 한정된 조약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동 조약 제1조에서 이 협정은 배타적 경제수역에 적용한다고 밝히고 있다. 사실상 이 협정은 장기적으로 배타적 경제수역(이하 EEZ)을 확정할 때까지의 과도기적 협정이라고 할 수 있다.

 

1998년의 어업협정에 관한 언론의 관심은 지금까지 독도문제에 집중되었다. 일부 민간단체에서는 "신어업협정으로 독도가 일본령이 될 것이다"며 말도 안 되는 반대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업협정상 독도 주변 해역이 한일 중간수역에 포함된 것은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일이다.(정부는 협정 본문에서 중간수역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특정 용어 사용 여부에 상관없이 그 해역 자체가 한국 단독 구역이 아니고 일본과의 공동 해역이 된 것은 사실이다) 독도 주변 해역이 한일 중간수역이 된 것은 결국 한국 정부가 독도가 사람이 거주하거나 혹은 독자적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섬이라는 점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한국해양대학교 국제법 교수인 김영구 박사가 충분히 지적한 바 있다) 이 협정으로 독도에 대한 한국의 영유권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독도 영유권의 대한 한국측 입장을 약화시키기에는 충분한 것이다.

 

하지만 1998년 어업협정에는 독도 외에도 또 다른 숨겨진 이슈가 존재한다. 1974년 체결된 한국과 일본의 대륙붕 협정은 제주도 남쪽의 거대한 대륙붕을 한일 공동개발구역으로 규정하고 있다. 1974년의 대륙붕협정은 한국과 일본의 중간수역을 훨씬 넘어서서 일본 쪽에 가까운 바다 밑 대륙붕까지 모조리 한일 대륙붕 공동개발구역에 포함시키고 있다. 언뜻 한국에 압도적으로 유리하고 일본측에 불리한 것처럼 보이는 대륙붕 경계선이 채택된 이유는 당시 한국이 원용한 국제법 학설 때문이다. 한국은 제주도 남쪽 바다의 대륙붕 경계를 선정할 때 한국과 일본의 지리적 중간지점을 무시하고, 제주도 남방의 대륙붕이 한반도로부터 발달한 대륙붕임을 주장(대륙붕 자연연장설)하여 한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경계선을 설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1998년에 체결된 한일 어업협정이 장기적으로 한일 대륙붕협정과 모순,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한일 어업협정은 단순한 어업협정이 아니고 한일간 EEZ의 잠정 합의안에 가까운 것이다. EEZ는 수면뿐만 아니라 수면 아래의 대륙붕까지도 관할하는 제도이다. 1998년에 체결된 어업협정은 한일 대륙붕 공동 관할구역의 대부분을 잠정적인 일본측 수역(장기적으로 일본측의 EEZ)으로 양보하고, 나머지 일부만 제주도 남부 한일 공동관리수역으로 설정하였다. 결국 1974년 협정상의 대륙붕 공동 관할구역은 이제 바다 아래 대륙붕은 한일 공동관리 구역이고, 바다 수면과 어로문제에 관한 한 1998년 이후 일본측의 단독 관할 구역이라는 이상한 해역이 된 것이다.

 

한국정부가 이렇게 양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물론 있다. 대륙붕 경계선을 설정할 때는 해저의 지질학, 지형학적 문제도 고려되지만, EEZ는 원칙적으로 지질학적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거리 기준에 따라서 획일적으로 설정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EEZ는 기선으로부터 200해리까지 설정되는데, 제주도 남쪽과 일본 큐슈 서쪽 바다 사이의 거리는 400해리가 되지 않으므로 일본과 한국 사이에 획일적으로 중간선을 설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제주도 남방에 부분적으로 공동관리수역이 설정된 이유는 일본측 무인도인 조도나 남녀군도가 EEZ 기점이 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한국과 일본의 견해가 달랐기 때문이다. 일본측의 무인도인 조도가 만약 EEZ의 기점이 될 수 있다면 1974년 협정상의 대륙붕 공동 관할구역 전체가 일본측의 EEZ로 편입된다. 한국 주장대로 일본의 조도나 남녀군도가 무인도이므로 EEZ의 기점이 될 수 없다면, 구 대륙붕 공동관할구역의 일부(1998년 어업협정상의 제주도 남방 공동관리 수역 전부)는 한국의 EEZ가 된다. 한일 양측의 견해 차이가 있었으므로 문제가 되는 해역만 공동관리 수역으로 설정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일본측의 조도 기점 주장에 반대하여 제주도 남방에 부분적이나마 공동관리 수역을 설정한데 대해 만족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어업협정과 대륙붕 협정과의 근본적 모순에 대해 장기적으로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상세한 해명은 하지 않았다.

 

유엔해양법과 국제관행에 따르면 EEZ의 범위는 기선으로부터 200해리까지 인정하고, 양국 사이 해역이 400해리가 되지 않는 지역은 등거리 선에 따라 중간선으로 경계선을 설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EEZ를 항상 중간선으로 경계선을 설정하도록 강제되어 있는 것은 아니며 국제법적 관행, 당사국의 조약에 따라 다른 방법에 의해 경계선을 설정하는 것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1998년 당시 한국정부는 1974년 한일 대륙붕 협정을 근거로 한일 간의 어업협정 경계선 설정시 좀 더 넓은 영역을 요구할 수도 있었다. 설사 그러한 공세적인 요구를 일본측이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최소한 제주도 남방 해역에서의 공세적 주장을 지렛대로 활용하여 독도 문제에 관한 일본측의 양보를 얻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그 어느 것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만약 1974년 대륙붕협정과 그 협정의 기초가 된 대륙붕 자연연장설을 원용하여 제주도 남방 해역에 대해 공세적 주장을 펼칠 경우, 서해에서 중국이 그러한 주장을 역으로 이용할 것을 한국 정부가 우려했는지도 모른다. 서해 대륙붕은 한반도가 아닌 주로 중국 대륙에서 발달한 대륙붕이다. 한국이 제주도 남방 대륙붕이 한반도에서 발달했음을 이유로 EEZ 경계 획정시 등거리선 원칙을 거부한 상황에서, 중국이 서해 EEZ 경계획정시 한국 주장을 원용할 경우 한중 EEZ 협정시 한국이 아주 불리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확한 진상은 알 수 없지만 만약 한국 정부가 그런 우려로 제주도 남방 대륙붕을 쉽게 포기했다면 지나치게 소심한 태도로 보인다. 서해 대륙붕은 제주도 남방 대륙붕과는 달리 해구로 구분되지 않는 단일 대륙붕이며, 한중 양국 사이에는 대륙붕에 관한 어떠한 기존 조약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해와 남해를 분리하여 충분히 국제법적 대응 논리를 만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다.

이러한 소극적 태도의 밑바탕에는 한국이 처했던 시대적 상황이 있었다. 1998년 한국은 IMF 위기를 맞아 차분하게 이해타산을 따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IMF 위기상황에서 경제대국 일본의 협조가 절실했던 한국으로서는 미봉책으로나마 한일간의 분쟁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역으로 일본은 얄밉게도 한국의 그러한 위기를 이용하여 능숙하게 국익을 확보했던 것이다.

 

결국 1998년 어업협정은 독도 문제, 제주도 남방 대륙붕 문제에 있어 한국이 모두 양보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만약 현재의 어업협정 경계선이 그대로 EEZ로 전환될 경우 발생될 문제를 생각해 보자. 1974년 대륙붕 협정상의 한일 공동관리수역에서 만약 가까운 미래에 상상을 초월하는 초대형 해상 유전이 발견될 경우 EEZ와 대륙붕의 상호효력을 둘러싸고 한일 양국 사이에 격렬한 국제적 분쟁이 초래될 것이다. 유전 규모가 양국 경제의 체질을 바꿀 정도로 대규모일 경우, 그 분쟁이 반드시 외교적 협상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어쩌면 무력충돌을 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1998년 어업협정은 EEZ와 대륙붕에 관한 한국 정부의 장기적인 대응전략 없이 체결된 졸속 조약이라는 혐의가 짙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상황이 여전히 유동적이라는 점이다. 1998년 어업협정은 EEZ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잠정적 협정이지 그 협정 자체가 대륙붕 협정을 배제하거나, 한일 양국의 EEZ를 확정하는 협정은 아니었다. 더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 EEZ와 대륙붕은 국제법적으로 별개의 제도이며, 나아가 1974년 체결된 한일 대륙붕협정은 유효기간이 무려 50년으로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어업협정상 일본에 양보한 해역일지라도 여전히 그 수면 아래의 대륙붕은 지금도 엄연히 대한민국이 석유를 채굴할 수 있는 공동관리구역인 것이다.

따라서 현 시점에는 우리는 1998년 협정의 타당성을 둘러싸고 소모적인 내부 논쟁에 치중할 필요가 없다. 길거리에서 독도를 되찾자는 엉터리 캠페인을 벌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주도 남방 해역과 독도 문제를 한국에 최대한 유리하게 해결하기 위한 치밀한 외교적, 국제법적 전략을 마련하는 일이다. 가깝게는 어업협정상의 관할구역을 EEZ경계선으로 전환할 때까지 아직도 시간이 남아있으며, 멀리 보면 한일 대륙붕협정의 유효기간인 2028년까지 아직도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

 

앞으로 EEZ 경계선 확정 때 한국이 취할 수 있는 대책은 무엇일까? 제주도 남방 대륙붕에서는 비록 등거리 중간선 원칙에 따라 EEZ를 설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더라도 과거 대륙붕 협정상의 한국의 연고권을 이유로 등거리선보다는 한국에 유리한 지점, 예를 들어 구 대륙붕 공동관할 구역의 중간선에 경계선을 설정하자고 주장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EEZ 협정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2028년까지는 1974년의 한일대륙붕협정이 계속 유효한 것임을 주장해야 한다. 만약 일본이 무인도에 불과한 조도를 EEZ의 기점으로 주장한다면, 한국도 독도를 EEZ의 기점으로 주장해야 한다. 만약 일본이 대륙붕 협정을 조약 만료 기간 전에 합의무효 시키자고 주장한다면 한국은 독도나 제주도 남방 대륙붕 문제에 관한 일본측의 명시적인 양보를 요구해야 한다. 한국이 동원할 수 있는 국제법적 근거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무조건 다 주장하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주장이 일부 객관적 제3자에게는 한국의 무리한 억지 요구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억지가 아니다. 일본을 보라. 한국은 독도에 대한 역사적 연고권을 가지고 있고, 해방 이후 50여 년 간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50년 동안 쉬지 않고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해 왔다. 그 결과 일본은 1998년 어업협정 체결시 한국으로부터 많은 양보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현재 제주도 남방 해역에 대규모 해저 유전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언제인가 대규모 유전이 발견될 가능성이 있고, 또는 다른 유용한 자원이 발견될 수도 있는 해역을 쉽게 포기할 수는 없다. 최악의 경우 부분적으로 포기해야 할 경우라도 그것을 대가로 다른 외교적 양보를 일본에게 요구해야 한다.

 

언론과 시민단체, 학계에서 1998년 어업협정을 비판하는 것은 좋지만, 그 비판이 장기적으로 한국의 외교적 입장을 불리하게 만들 수도 있는 주장은 삼가야 한다. 1998년 어업협정이 한국 정부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약화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알만한 사람들은 그 사실을 다 알고 있으므로 더 이상 소모성 논쟁에 치중할 필요는 없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1998년 협정이 독도 영유권과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해명하는 한국 정부의 고민을 이해해 주는 것도 필요하다. 정부도 1998년 어업협정을 변명하고 해명하는데 시간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EEZ와 대륙붕 문제, 독도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새로운 국제법적, 외교적 대응방안을 모색하는데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과제가 하나 더 있다. 모든 외교적 분쟁은 평화적 수단으로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평화적 해결수단을 포기하고 가용한 모든 수단, 특히 무력을 동원하여 사태를 해결할 유혹을 느낄 때, 그에 대응하는 실력을 갖추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반드시 전쟁을 전제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적절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상대방도 무력에 의존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평화적 해결을 모색할 것이다. 평화는 전쟁을 대비하는 자에게만 주어진다는 냉엄한 국제관계의 현실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