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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일제강점·이순신 등 '사료수집 40년'
"한줌 재 되어서도 '우리땅 독도' 지킬 터"
[부음에 부쳐] 23일 타계한 '재야 서지학자' 고 이종학 선생
정운현 기자 jwh59@ohmynews.com  
후보 단일화 문제에 온 국민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큰 별' 하나가 떨어졌다. 사람들은, 그리고 세상인심은 큰 감투나 대중적 유명세에 주목하기 쉽지만 그는 그런 화려함보다는 이미 말라 비틀어진 화두가 돼버린 민족과 역사문제를 평생 붙잡고 살다가 한낱 '재야학자'라는 싸구려 감투 하나를 쓰고 우리 곁을 떠났다.

오늘자(25일) 대부분의 신문 동정란에는 제법 큼직한 부음기사 두 개가 나란히 실렸다. 한 사람은 소설가 홍성유 씨이며, 또 한 사람은 '재야 서지학자' 이종학씨다.

먼저 홍성유씨를 생각하면 필자는 그가 80년대 중반 <조선일보>에 연재했던 '인생극장'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작품은 요즘 SBS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야인시대'의 원조인 셈인데, 방송에서 조연으로 나오는 망치, 번개, 왕발 등의 이름을 그때 소설에서 본 기억이 난다. 홍씨는 소설가 이외에도 미식가로도 소문났던 사람으로, 그는 대중적 인기와 함께 비교적 즐겁게 한 세상을 살다갔다고 하겠다.

▲ 일생을 사료수집에 바친 재야 서지학자 고 이종학 선생.
다음 나머지 한 사람, 이종학(李鍾學). 언론사 학술담당 기자들에게는 낯익은 이름이자 때론 구세주이기도 했지만 대중들에게 그리 익숙치 않은 이름이다. 더러 독도문제가 터지거나 하면 언젠가부터는 독도박물관장, 그 이전에는 '재야 서지학자'로 소개되곤 하던 정도였다. 그런 이후에는 대중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곤 했던 이름이다.

그런 그가 지난 23일 오후 2시 그가 살고 있던 수원시내 아주대 부속병원에서 향년 75세로 타계했다. 그는 전재산을 털어 국내외에서 자료를 모아 때론 관련 학계를 위해, 또 때론 나라를 위해 아낌없이 내놨던 인물로, 몇 가지 분야에서 그는 전문가 뺨치는 식견과 방대한 자료수집으로 전문가 대접을 받았다.

내가 이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1980년대 후반으로 기억된다. 그 무렵 나는 친일문제에 막 눈을 뜨고서 관련자료를 모으기 위해서 청계천, 인사동 일대의 고서점을 열심히 찾아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지금은 사라진 한 고서점에서 일제시대 자료 하나를 놓고 나와 이 선생이 서로 사겠다고 언쟁을 벌인 것이 계기가 돼 그날 처음으로 서로 수인사를 나누고 말문을 트게 되었다. 첫인상에 머리숱이 많고 활달해 보여 줄잡아 50대 중반으로 생각했는데 그때 이미 선생은 60대 중반이었다.

지난 97년 삼성문화재단 지원을 받아 독도에 독도박물관 건립에 헌신한 후 잠시 관장직을 잠시 맡았을 뿐 선생은 그 흔한 '전문위원' '명예박사' 감투 하나 탐하지 않으셨다. 선생의 이름 석자 앞에는 오직 '재야 서지학자'라는 값싼 명칭 하나가 붙어다녔을 뿐이다. 마치 일생을 친일파 연구에 헌신하시다가 지난 89년 타계하신 '재야 사학자' 임종국 선생과 비견된다고 할 수 있다.

겸임교수 감투 하나 얻어 걸치지 못했으나 선생이 남긴 업적과 발자취는 그 어떤 역사학자, 그 어떤 전문가의 학문적 성과보다도 방대하고 심대했다고 할 수 있다. 말년에 선생은 수원시내 자택 인근에 자신의 아호(史芸, 역사의 밭을 김매기함)를 따서 '사운연구소'를 설립, 소장직을 맡아 자료정리와 자료집 발간에 전념하셨다.

선생이 전재산을 털어 심혈을 기울여 자료를 모으고 천착했던 분야는 실로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돌이켜보면 한 사람이 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고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생각나는 몇 가지 분야만 꼽아봐도, 독도문제와 '동해' 표기 지도 수집, 동학(천도교 포함), 이순신, 수원 화성(華城) 이름되찾기, 안중근 의사, 일제강점 자료 등.

선생은 그 동안 모은 자료를 재분류, 가공, 자료집으로 출간하거나 전시회를 통해 대중들에게 알리고 보여주는 일을 큰 보람으로 삼고 있었다.

동학혁명 100주년을 맞아 지난 1994년 선생은 서울 인사동 근처 천도교 본부 건물에서 동학100주년 자료전시회를 하였는데, 그때 전시된 자료 가운데는 일본에서 복사해온 신문 자료까지 포함돼 있어 나를 감탄시킨 바 있다.

지난해에는 일본에서 입수한 일본정부 문서인 '한일병합시말'을 영어, 일어, 한글 등 3개 국어로 간행, 외국 관련기관과 연구자, 도사관 300여 곳에 배포했다. 이 자료집의 번역출판은 한 해 앞서 '1910년 한국강점자료'를 간행, 해외에 배포한 후 나치전범기록조사단의 G.홈스 박사가 "한글을 몰라 영문판으로 만들어지면 꼭 구해서 보고싶다"는 편지를 보내온 것이 계기가 됐다.

'일제시대'라는 공통관심사 때문에 필자는 선생을 더러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선생이 꺼내보이는 자료는 그 하나하나가 모두 특종감이었다. 필자는 지난해 선생이 건네준 자료를 토대로 특종기사를 하나 쓰기도 했다.

지금은 사라지고 흔적도 없는, 한말 서울 정동에 건립됐던 한국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손탁호텔'에 관한 보도가 그것이다. 선생은 말년에도 손수 고신문을 뒤지고 감정해 역사적 사실을 재조명하고 새로 밝혀내는 작업에 전념했었다. 또 그 직전에 보도한, 일제가 순종이 머물던 창덕궁에 파출소를 설치해 감시했다는 기사 역시 선생이 소장했던 '조선지경무기관'이라는 사진첩을 통해 밝혀진 사실이었다.

▲ 이종학 선생의 부음과 생애를 보도한 25일자 중앙일보 기사
ⓒ 중앙일보 PDF
선생을 처음 만난 날 선생에게서 들은 일화 하나가 아직도 귀에서 어른거린다. 독도를 놓고 한일간에 영토분쟁이 일 때마다 선생은 독도가 우리나라 땅임을 입증하는 자료를 공개해 일본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당시 외무부의 모 국장이 전화를 걸어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갔더니 점심식사가 끝난 후 그 국장이 봉투를 하나 내밀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웬 것이냐고 묻자 우리가 못하는 일을 이선생이 해주신 데 대해 '작은 성의'로 드리는 것이니 받아두라고 하더라고.

그러나 선생은 아직은 견딜 만하니 나중에 꼭 필요하면 그때 도와달라며 그 작은 성의를 뿌리치셨다. 지난해 손탁호텔 보도건으로 수원 자택을 방문했을 때 그 얘기를 다시 꺼내며 그 이후 '작은 성의'를 받아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없다'고 하셨다.

어찌보면 선생은 자신의 운명을 조금은 예견하셨던 것 같다. 지난해 선생은 <한겨레>와 손잡고 근대문물 관련자료를 분야별로 묶어 기획연재를 하셨다. 금년봄 무렵에 나눈 전화에서 선생은 자료를 정리하는 일이 생각만큼 속도가 나질 않는다면서 조급한 마음을 보이셨다. 선생의 소장자료 가운데 상당수는 사운연구소에서 후학들이 정리작업을 하고 있지만 아직 자택 2층 서재에는 손도 대지 못한 자료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얼핏 기억나는 몇 가지만 떠올려 봐도, 수천매에 달하는 일제 당시의 각종 엽서를 비롯해 국내에 거의 유일하게 소장하고 있는 사진자료집, 그리고 조선총독부 중추원에서 펴낸 전국 사찰 및 각 지역 현지 실태보고서. 선생이 소장하고 있는 이 보고서들은 필사본으로, 모두 원본이자 또 국내 유일본들이다. 선생은 고물상에서 이 '금덩어리'를 캐냈다고 하셨다.

선생은 자료발굴이나 자료집 편찬은 물론 '역사바로세우기운동'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수원성의 옛이름 '화성(華城)'의 제이름을 찾아준 주인공도 선생이다. 지난 97년 화성이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이면에는 선생의 공적이 적지 않다.

또 지난해에는 '조선해'로 표기된 고지도를 우표로 만들어 무료로 보급하기도 했다. 우표를 통한 역사교정운동이었던 셈이다. '동해' 표기를 두고 일본과 논란이 일자 선생은 "동해는 방위개념일 뿐더러 일본측에서 볼 때 동쪽바다도 아니어서 설득력이 없다"며 동서양의 고지도에서 '조선해'라고 표기한 사례를 찾아 "원래의 명칭인 '조선해'로 불러야 한다"며 보다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편 바 있다.

1927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나 공민학교 학력이 전부인 선생이 해방후 서울에서 고학을 하면서 책이나 실컷 읽어보자며 1957년 연세대 인근 철길 옆에 '연세서림'을 낸 것이 그를 서지학 연구의 길로 안내한 것이다.

독도문제와 일제강점기 사료에 관심을 가졌던 관계로 선생은 한 해에도 몇 차례씩 일본을 사비로 다니면서 자료를 수집해 학계와 장부기관, 언론기관에 공급(?)하곤 했다. 이제 그 풍부한 '자료의 보고' 하나가 영원히 문을 닫은 셈이다.

선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독도'와 선생을 가장 쉽게 연관시키지 않을까 싶다. 선생은 독도가 우리땅임을 입증시키는 데 평생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97년 울등도에서 개관된 독도박물관은 선생의 자료기증이 없었다면 개관 자체가 불가능했다. 한 개인의 노력이 정부도 못하는 일을 이뤄낸 것이다.

선생의 부음소식을 접하면서 얼핏 떠오르는 것은 선생의 '무관(無冠)의식'이다. 선생은 생전에 독도박물관장,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 초대소장 등 몇 가지 직함을 가진 바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해당 기관에 자료를 기증한 인연으로 수락한 것일 뿐, 벼슬을 탐해서 취한 것은 아니었다.

선생은 애써 수집한 자료의 공개와 제공에 대해 관대하기로도 소문났었다. 더러 언론플레이를 잘한다는 비판도 없지 않았으나, 필자가 돌이켜보건대 더 많은 곳에 알리고자하는 마음에서였다고 생각된다. 독립기념관을 비롯해 동학혁명기념관, 현충사 등에 선생의 피와 땀을 쏟아 모은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일생을 사료수집에 몸바치고 또 제대로 된 대접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살다간 선생. 평생 남에게 베푸는 일만을 해온 선생은 죽어서도 한 평 땅 차지하기를 마다한 채 한줌 재로 돌아갔다. 선생은 생전에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뼛가루를 독도 앞바다에 뿌려달라"며 죽어서도 독도의 수호신이 되고싶어 했다고 한다. 유족들은 고인의 유언에 따를 것으로 전해진다.

부패한 정치인, 탐욕스런 기업가, 권언유착 언론사 사주들의 빈소에는 청와대 관계자가 조문와서 번쩍거리는 훈장을 척척 잘도 바치더만 선생의 빈소에는 쇳덩어리로 만든 훈장 하나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한다. 생전에 선생이 훈장받고 칭찬받자고 한 일은 아니라지만 벼슬아치들이 참으로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

헌책더미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쓰며, 알아주는 이 없어도 꿋꿋이 외길을 고집했던 선생, 이제 그 고단한 육신을 거두고 검푸른 물결과 함께 동해의 막내 독도를 지키며 영면하시라.

2002/11/25 오후 4:06
ⓒ 2002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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